아리내 2017. 4. 28. 06:48

꽃 사진과 꽃에 대한 모든 정보를 활용하여 꽃 이름을 검색해본다. 확실하게 답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이번에는 조금 어렵다. 꽃의 모양이나 잎의 모양을 보아 이 꽃은 '사계소국'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꽃 검색을 하다가 뭐이리 비슷하게 생겼으면서도 또 다르냐고 아이들처럼 말도 안되는 투정을 늘어 놓았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분류를 하고 이름을 정하는 것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꽃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하나의 꽃이라도 그 꽃에 대해 깊이 알아보려하고 이해하려 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최근 나의 SNS와 관련한 일들이 생각났다. 
 
SNS를 하다보면 한번씩 받는 말이 있다. 
"우리함께 '소통'해요." 
 
그런데 나에게 '소통'을 신청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연 진정으로 '소통'하고 싶어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소통이란 무엇인가? 네이버 사전(국립국어원제공)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나와있다.
1.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2.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 
 
흔히 '소통'을 신청하는, 어떤 경우에는 강압적인 느낌으로 요구하는 경우의 계정을 보면 소통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계정이 많다. 그 중 하나는 내가 자주하는 말로 '영혼없는 계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SNS에서 나의 원칙은 나만의 저작물(크게 의미있는 내용은 없지만)을 만든다이다. 물론 100% 지켜지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지키려고 하고, 간혹 내가 생각하기에 정말 꼭 함께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글만 한번씩 공유한다. 이 경우에도 가급적 나의 의견을 짧게라도 넣으려고 노력 한다.  SNS를 대하는 나의 생각이 이러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남의 저작물들 만을 모아 SNS를 꾸미는 경우를 무척 싫어하다.  
 
이솝우화에서 다른 새들의 깃털을 모아 예쁘게 꾸민 까마귀의 이야기를 아마 기억할 것이다. 자신의 깃털을 발견한 다른 새들은 기분 나빠하며 자신의 깃털을 빼았앗고 결국 아무 것도 없는 까마귀의 몸으로 돌아가게 된다. 물론 그것으로 끝이 아니고 끝없는 조롱과 멸시가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에서 주는 교훈은 너무 억지스럽고 잔인하다고 생각하며, 나는 이 이야기에서 까마귀가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 까마귀는 어떻게 해야한다는 말인가? 솔직히 그대로 두면 까마귀를 알아주기는 했을까? 까마귀도 아름다워 보이고 싶어 최선을 다해 나름 열심히 자신을 꾸몄다. 그게 무슨 잘못이지? 다른 새들의 깃털을 직접 뽑은 것도 아니고 말이다. 
 
말이 길어졌지만 이 이야기를 통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적어도 까마귀는 기본 몸통은 자신의 것이었다는 것이다. SNS에서 보면 아예 남의 몸통까지 가져와 자신은 쏙 빠져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러한 경우를 나는 '영혼없는 계정'이라 부른다. 계정 속에 아무런 영혼이 담겨 있지 않다. 
 
나는 민낯을 드러내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다른 잡다한 것들을 앞에 펼쳐 놓고 뒤로 숨어있는데 이렇게 해서 무슨 소통을 한다는 말인가? 백번양보해서 어쩔 수 없이 뒤로 빠져있다 치고 과연 나의 저작물에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보기는 하는 것일까? 나의 게시물도 자신의 홍보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아닐까? 궁극적으로 단순히 나를 팔로워의 숫자로 만드는, '좋아요'의 숫자로 만드려는 행동을 소통이라 할 수 있는가? 
 
그러는 한편으로는 이렇게 외치고 있는 나는 과연 제대로 된 소통하고 있나를 반성해 본다. 나도 의미없는 팔로워와 좋아요에 목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한번씩 SNS 상에서의 만남이 햄(H.A.M)과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허공에 전파를 쏘다가 수많은 전파속에서 우연히 같은 주파수를 만나는 것은 그 얼마나 신기하고 반가운 일인가? 이러한 것을 인연이라고 부른다. 이 소중한 인연을 영혼있는 소통으로 이어나가고 싶다. 
 
오늘의 선곡은 당연히 이선희의 '인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