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의 '나이팅게일과 장미'
''나이팅게일과 장미'는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의 하나입니다.
(참고로 여기서 나이팅게일은 사람이 아니라 나이팅게일 새입니다.)
이글은 '행복한 왕자'로 유명한 오스카 와일드의 글입니다.
작가이면서 시인이고 극작가이기도 한 그는
본래 동화 작가는 아니지만
자신의 자녀를 위해 동화를 썼다는 이야기가 있네요.
자녀들을 위해 쓴 글이라고는 하지만
오스카 와일들의 동화들은 다른 동화와는 다르게
냉철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허무하기도 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다시말해 그의 동화에서는
다른 동화들 처럼 "~행복하게 살았데요."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개인적으로는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를 좋아하지만
아이들용은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읽기에 좋지 않다거나
아이들이 읽기에 너무 어렵다거나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생택쥐베리가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했던
'어린왕자'에서 처럼
어른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좀더 많이 주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나이팅게일과 장미'라는 글을 처음 읽고
꽤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내 예상을 완전히 뒤엎은 반전이었던 것이었지요.
우선은 용서할 수 없는 분노로 몸을 가눌 수 없었지요.
나이팅게일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 만든 붉은 장미꽃을
남학생은 여학생에게 퇴짜 맞았다는 이유로
바닥에 무참히 버리고 맙니다.
'정말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때문에
남학생을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보석 때문에 장미꽃을 저버린 여학생도 용서할 수가 없었고요.
이러한 분노는 오스카 와일드의 다른 이야기 '헌신적인 친구'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역시 엄청난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요.
하지만 '헌신적인 친구'를 읽으면서는
나는 절대로 방앗간 주인과 같지 않다라는 생각으로
방앗간 주인을 마구 욕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나이팅게일과 장미'에서는 나도
나에게 다가온 소중한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그리하여 소중한 것들을 무참히 버릴 수 있는
남학생 또는 여학생과 같은 인물이 될 수 있다라는 생각에
그러한 분노는 오히려 두려움으로 변해갔습니다.
또하나 글을 읽으며 '나이팅게일은 왜 죽었을까?'라는
의문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대부분 나이팅게일의 죽음을 소년에 향한
'순수한 사랑'으로 많이 이야기 합니다.
저또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나이가 들다 보니 나이팅게일은 소년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위대한 사랑에 대한 강한 믿음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바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문득 주위에서 붉은 장미를 보다보면
이 글이 생각나고는 합니다.
그러고 보니 장미에 관한 전설 중에
하얀 장미에 반한 나이팅게일이
하얀 장미를 품에 안으려다 가슴이 찔려
그 피로 장미가 붉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아마 이 전설을 빌려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되네요.
오늘도 나이팅게일을 생각하며
나에게 다가온 소중한 것들을
의미있는 것들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무참하게 버리면서 사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며 살아야겠습니다.